정덕희 행복하소서, 외환위기, 행복전도사, 학력위조, 6년간 스님과 불당에서 불경스런 영상 촬영, 정덕희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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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특별수사대

정덕희 행복하소서, 외환위기, 행복전도사, 학력위조, 6년간 스님과 불당에서 불경스런 영상 촬영, 정덕희 근황

by 스캔들 특별수사대 2022.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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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희 그녀는 외환위기 때 해서과 가이 나타는 언변의 달인으로 당시 전 국민을 웃게 해 준 전설적 인물입니다. 특유의 걸걸한 말투와 항상 미소 짓는 얼굴로  "행복하소서" 한마디로 전 국민 웃으면 복이 와요 라는 말처럼 전 국민이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정덕희 그녀의 근황을 알아봅시다. 행복하소서~~

 

정덕희 외환위기 당시 '행복하소서' 유행어 하나로 전국민 웃음치료사를 자청했던 입지전적 인물

 

행복하소서 유행어를 시그니처럼 더불어 늘 에너지 넘치고 유쾌한 모습의 스타 강사로 수많은 강연 무대와 방송을 거침없이 가로질렀던 정덕희는 하루아침에 그간 쌓아온 것을 모두 무너뜨리게 됩니다.

 

정덕희 지난 1997년 외환위기로 시름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웃음을 던져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특유의 재치 있는 말솜씨와 솔직한 화법으로 듣는 이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일명 행복 강의는 전업 주부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방송 정부기관 대학 기업 등에서 1천 번이 넘게 강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강의를 통해 행복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죠.

또한 어려웠던 가정 환경을 딛고 성공한 스토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07년 정덕희에게 핵 태풍이 밀려오게 됩니다.

당시 사회적 이슈 였던 유명인 학력위조 파문이죠. 그녀 또한 유명인이었기에 점증을 피해 갈 수는 없었어요.

학력 위조 파문에 휘말리며 잘나가던 그녀의 인생에 급제동이 걸립니다.

 

이후 연달아 터지는 그녀를 둘러싼 폭로들은 충격 그 자체였죠.

또한 대중들이 그녀에게 느끼는 배신감도 컸습니다.

 

정덕희는 어떤 삶을 걸어온 인물이었던 것일까요.

정덕희는 열두 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난 뒤 고등학교 2학년 때 하늘나라로 떠났던 아버지의 빈자리를 시작으로 살기 위한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유년시절을 보냅니다.

 

고3이던 10월의 마지막 밤 그는 장항선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가정 형편상 더 이상 학업을 이어나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출판사를 거쳐 한 화장품 회사 상담원으로 취직했습니다.

회사 근처의 자취방에서 나이들어 쇄약 해지신 어머니와 막내 동생과 함께 살았던 그녀는 실질적인 가장이었습니다.

정덕희 저택 벽난로

 

그렇게 2년여가 지났을 때 남편을 만났습니다.

같은 회사 동료였던 남편은 명문대에서 석사학위까지 받고, 200평이 넘는 대저택에서 사는 부잣집 아들이었습니다.

 

처음엔 아무런 마찰이 없는 결혼 생활을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부모가 부부 갈등 끝에 황혼이혼을 한 것입니다.

황혼 이혼을 하게 되자 시어머니는 그 스트레스를 저하고 제 딸에게 풀기 시작했어요.

 

저한테 그러는 건 괜찮았는데 어린 딸에게 개집 아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우리 집안 꼴이 이렇게 됐다라며 화풀이를 하실 때는 그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하지만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너 같은 며느리는 필요 없다.

우리 집에서 나가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그녀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추운 겨울 마땅히 갈 데가 없어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한없이 울고 있던 그녀를 찾아 남편이 달려왔습니다.

 

그날부터 정덕희는 선물 가게의 창고로 쓰는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딸과 함께 웅크리고 잠을 잤습니다.

두어 달후 남편도 아들과 함께 본가에서 나왔고 네 식구가 지하 월세방을 얻어 생활했습니다.

 

남편은 너무 귀하게 자란 탓인지 사회생활을 원만히 해내지 못했습니다.

반면 세일즈맨으로 나선 그녀는 입사한 지 한 달 반 만에 과장이 됐고 곧 외국계 보험회사의 스카우트됐습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유의 말솜씨, 주변 권유로 강연 시작, 정덕희 스타강사 탄생

 

 

그러던 중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유의 말솜씨로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는 그녀에게 주위에서 강연을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승승장구했지만 가정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처음엔 오늘은 어디 가서 웃음을 팔고 다녔냐라고 빈정대더니 언제부터인가 그의 일과를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습니다.

 

보험 외판원으로 나가 제법 돈을 벌기 시작할 때부터였습니다.

제가 유명해져 차를 몰고 다니고 비서까지 두게 되니까 더 심해지더군요.

외출했다. 돌아오면 어디를 갔었는지 일일이 보고해야 했어요.

 

어떤 날은 제가 다녔던 곳을 남편과 함께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내가 웃음 팔아번 돈으로 먹고살고 싶지 않다며 억지로 토하기도 했어요. 

 

그럴 땐 정말 미워 죽겠더라고요.

매일같이 그랬으면 벌써 이혼했겠죠.

그러다가 잠잠해지고 또 다시 터지는 식이였어요.

진지하게 이혼을 고민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남편은 가난한 집 딸인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준 남자다

남편은 그렇게 나에게 자신의 인생을 저축했다.

 

지금은 내가 남편에게 저축할 때다.

남편이 성공하면 이혼하자 그때까지는 버티자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종교를 갖기 시작하면서 안정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후 스타 강사로 승승장구하는가 했지만 가짜 학력이 드러나며 큰 충격을 선사합니다.

 

정덕희 학력과 경력 가짜임을 시인하면서도 자신이 스스로 학력을 위조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

 

 

2007년 신정아 사건으로 인해 학력 위조 논란이 불어닥친 것인데요.

그녀 또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정덕희는 전업 주부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1998년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교수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녀는 방송통신대 및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경인여대 교수를 역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경인여대에서도 교수가 아닌 시간 강사로 잠시 강의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에 대해 정덕희는 학력과 경력이 가짜임을 시인하면서도 자신이 스스로 학력을 위조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자신의 학력 위조를 보도한 언론사를 통해 그동안 학력 때문에 많이 괴로웠습니다.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돈 주고 사라는 제안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하지만 한 번 돌아선 사람들의 마음은 예전 같지 않았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시간이 걸리던 중 또 다른 논란에 휘말립니다.

 

2008년 정덕희는 한 절의 주지 스님과 송사를 버리게 됩니다.

스님이 사찰 건물과 부대 시설을 양도 하기로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송사를 벌인 것인데요.

 

그런데 계속해서 송사가 이어지던 중 스님이 구속됩니다.

특이한 것은 스님이 구속된 이유가 두 사람이 그동안 벌여왔던 송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이었죠.

 

그리고 밝혀진 내막은 또 한 번의 충격을 몰고 왔습니다.

 

.스님이 소유하고 있다는 정덕희와 스님의 동영상, 실체는 지금껏 미공개

 

 

바로 스님이 정덕희와의 사랑을 나눈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하겠다며 정덕희를 위협하다 경찰에 구속된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정덕희에게 넘겨줬던 사찰 토지 및 건물에 대한 소유권을 되돌려줄 것을 요구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정덕희는 해당 절의 신도 회장을 맡으면서 사찰에 많은 돈을 시주했고 스님 개인과도 수차례 금전적인 거래를 했습니다.

 

하지만 금전 문제가 꼬여버리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고소장을 난발하는 사이로 악화됐습니다.

정덕희는 학력위조 사건이 터진 직후 스님을 사기죄로 고소했습니다.

 

당시 조서에는 정덕희가 스님에게 사찰 부지 매입비 5억 4천만 원과 운영비 2억 6천만 원 등을 빌려준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나중에 양측이 화해 조서를 쓰고 합의하면서 종결됐습니다.

정덕희 저택 나무위 에서 명상

스님이 해당 토지의 소유권 및 지상 건물을 모두 정 씨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입니다.

두 사람의 합의로 일단락된 줄 알았던 송사는 스님이 정덕희를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고소하면서 재점화됐습니다.

정덕희가 실제로는 서울 우면동에 거주하면서 토지거래 허가를 받기 위해 광주시로 두 차례 주소지를 위장 이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스님은 정덕희와의 관계가 탄로 날까 봐 토지 소유권을 넘겨주는 데 합의했다며

2007년 맺은 화해조서의 내용도 부인했습니다.

 

경산 스님의 고소장 제출과 동시에 정덕희를 절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고소 내용에 대해 수사기관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리자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였다는 주장을 본격적으로 부각하고 나선 것입니다.

 

만약 스님의 주장대로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였다면 이는 평소 강의를 통해 가정의 중요성을 역설해왔던 정덕희에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되자 줄곧 두 사람이 사실혼 관계에 있다고 주장해 왔었는데 점차 사태가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보다 구체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언론에 두 사람이 외도 관계에 있다는 내용에 끝나지 않고 사찰 부지 및 건물을 다시 나에게 넘기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언론에 제보하겠다라며 정덕희를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정덕희는 스님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또한 정덕희는 인터뷰를 통해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그런 것이 있다면 조작된 것이다라며 자료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정덕희는 이후에도 방송 출연과 강의를 이어나갔고 최근에도 방송에 출연해 미술관과 영화 세트장이 연상되는 대저택을 공개했습니다.

 

한 번도 대학 나왔다고 말한 적이 없다라며 눈물을 흘렸지만 시청자들은 여전히 방송에 나오는 그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사생활 논란까지 있었던 그녀가 방송에 나와 행복을 전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랜 시간 여러 논란을 몰고 다녔던 그녀가 더 이상은 안 좋은 논란으로 화제가 되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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